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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verzich 上

2015. 11. 29. 02:48



* 사패 AU



 천장에 고인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톡 하고 작은 파문이 일었다. 인적 하나 없는 폐가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은 가늘고 예리했으며 몹시 길었다. 이쪽도, 저쪽도 각각 상대측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남은 것은 인내심 뿐이었다. 그리고 이쪽으로 말하자면 몇 년간의 짬밥으로 기다림에는 이골이 난 베테랑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공안국을 상대로 일주일이나 버틸 정도면 보통 놈은 아니지.’


 신중에 신중을 겸해야 한다. 요 근래 이만한 놈도 드물었다. 사이코 패스 측정기에 걸리지 않게 교묘히 한 구역에 집단 사이코 해저드를 일으키던 남자가 있었다. 메일 발신자를 공안국인 것마냥 꾸며 적나라한 사진을 담은 악성 메일을 유포했고, 속아넘어간 시민들은 온 몸이 난도질당한 시신들을 보고 쇼크에 빠졌다. 얄팍한 수였지만 그 동안 별 일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던 탓에 눈치채는 게 늦었다. 발각된 걸 눈치챈 범인은 공안국보다 한 발 앞서 도주했다. 그게 바로 이 곳, 곧 철거될 폐쇠 구역이었다. 분석관이 보내준 정보에 의하면 그는 이 건물의 상층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 말에 따라 문 뒤의 계단에서 조용히 대기한 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약 한 시간 동안은 소리 없는 추격전이 계속되었다. 맨 아래층부터 천천히 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층을 올라가면서도 사람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발걸음은 최정상층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멈추었다. 


 이 앞에 흉악범이, 사람을 살해하고 민간인들에게 사진을 유포한 범죄자가 존재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별다른 심경의 변화는 없었다. 새삼스레 두려움이 들 만큼 초짜도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인지라 위험을 앞에 둔 몸은 긴장감을 호소했다. 정적 속에서 맥박이 뛰고 숨소리가 공기를 잘게 찢었다. 이 팽팽한 접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감시관에게 연락을 취해 봤자 무용지물, 그렇다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다른 동료와 연락을 취했다간 위치만 발각시키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다리가 뻐근하게 통증을 호소해왔다. 날은 이미 깜깜하게 저물었고, 시간은 심야로 접어들고 있었다. 더 지체했다가는 앞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들어간다.’


 이대로 동향을 지켜보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기다리라면 밤을 꼬박 새워서라도 기다릴 수 있었으나, 지나치게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미 이 곳을 빠져나갔더라도 문제, 이 층에 없어도 문제였다. 지금 이 건물 안에는 자신과 범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동료도 있었고 감시관도 있었다. 감시관을 위험에 빠트리느니 차리리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상황을 타개할 방도를 찾는 게 옳았다. 마음을 먹고 도미네이터를 꽉 움켜쥐었다. 오랫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있던 몸의 관절이 삐그덕거렸으나 일일히 풀어줄 시간은 없었다. 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안쪽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문을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도미네이터를 가동시켰다. 


[휴대형 심리진단 진압·진압 시스템 도미네이터, 기동했습니다.]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정중앙으로 도미네이터를 겨누고, 몸을 360도로 돌려 가며 방을 살펴보았다. 도미네이터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삼엄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은 채 뱅글뱅글 정중앙을 돌았다. 조그맣게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겨우 주위를 분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둠으로 가득한 방 안에는 먼지 쌓인 가구들이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손에는 도미네이터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집행 도구가 쥐여져 있었으나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사람을 죽인 자가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머리 위쪽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몸이 쭈삣 곤두섬과 동시에 몸을 저 한편으로 날렸다. 쾅 하는 소리와 부욱,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왼쪽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잇새로 비명이 새었다. 혼미한 정신으로도 도미네이터를 들어 저쪽으로 겨누는 것을 잊지 않았으나, 초점이 빗나갔는지 도미네이터에서 음성이 출력되기도 전에 이차적인 공격이 닥쳐왔다. 뼈를 부수려는 목적인지 묵직한 무언가가 다리로 내리찍혔다. 이번 것은 치명적이었다.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도미네이터의 녹색 빛이 흐린 시야에서 미끄러졌다. 순간적으로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며 단 하나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죽음. 


그럴 수는 없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멀쩡한 오른쪽 다리로 무작정 허공을 찼다. 발 끝에 물컹한 게 걸리자 곧바로 온 힘을 담아 밀쳤다. 상대가 나가떨어진 사이에 어떻게든 활로를 찾기 위해 도미네이터를 찾아 바닥을 더듬거렸다. 사용자가 위험에 처하면 도미네이터는 대상 인식 여부와 별개로 모드가 전환된다. 그러니 일단 도미네이터를 잡고…


“끈질기군, 공안국.”


 구둣발이 손목을 꾹 밟았다. 절로 손에 힘이 빠지며 우드득 하고 뼈마디가 울었다. 어느새 집채만한 실루엣이 가물가물한 눈 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비명이 절로 나올 만큼 성한 구석이 없어서 상대의 모습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살금살금 뒤를 밟는 게 꼭 쥐새끼 같았지. 뭐, 이제 됐어. 갈 때 가더라도 길동무로 공안국 놈 하나는 데리고 가야겠거든.”


 그 말과 함께 차가운 물체가 여즉 찢겨진 자리에서 피가 흐르는 이마에 닿았다. 본능적으로 무엇인지 직감했다. 오래 전 사용이 금지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흉기, 이제는 책에서밖에 접할 수 없는 유물ㅡ권총. 


“잘 가라.”


 거친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어떤 인간도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는 없었다. 버러지마냥 추하게 살고 싶어서 움지럭댔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데… 희미하게 마음 속에서 파문이 일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우당탕 쿵쾅 하는 요란한 소음과 살과 살이 마주하는 타격음이 들림과 동시에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전신의 뼈가 타는 듯한 감각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켰다. 어둠 탓도 있고 좋지 않은 몸 탓도 있었으나, 상황을 파악하겠다는 일념이 그를 일으켰다. 도미네이터를 쥐려 했으나 오른손은 완전히 으스러져서 쓸모없는 살덩이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에 왼손으로 쥐는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잡이로써 가까스로 왼손에 도미네이터를 쥐고는 저쪽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부서지는 소리, 맞고 때리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일순간 창문으로 달빛이 비쳤다. 

 30대 초반의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까슬까슬하게 돋은 턱수염에 퀭한 눈매는 찡그려져 있었고 입에서는 연신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는 어렵지 않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자였다. 남자를 연신 손과 발으로 구타하고 가격하면서 구석으로 몰아가는 솜씨는 요즘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노련했고, 훌륭했다. 갑작스레 어디서 튀어나왔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그는 구석으로 몰린 남자의 얼굴에 도미네이터를 겨냥했다. 


[범죄 계수 321, 집행 대상입니다.]


 기계음이 출력되면서 녹색의 빛이 구석을 가득 메웠다. 마지막으로 본 남자의 얼굴은 공포와 경악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녹색은 곧이어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사방으로 튀어오른 피가 비린내를 풍겼고, 완전히 짓뭉개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남자의 얼굴이 몸과 함께 뒤쪽으로 기울더니 이내 털썩 쓰러졌다. 그 뒤로 붉은 웅덩이가 고였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몸을 움직였던 탓에 온 몸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흔들거렸으나 그는 피내음이 가득한 입술을 깨물며 여자를 타박했다. 


“뭐하다 이렇게 늦었어? 처음 말과 다르잖아!”

“중간에 아델이랑 연락이 두절됐거든. 우리 감시관님이 걱정되어서 찾아보니 약물에 마취되어 있길래 밖에서 대기 중이던 알레 군에게 도움을 청했지.”


 여자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듯이 뻔뻔하게 응대했다. 그러나 감정과는 별개로 입에서 나온 말은 매우 정당하고 타당성 있는 사유였기에 그는 더 말하는 대신 손짓으로 대신했다. 


“하여간 산테는 멍청하고 둔하다니까. 한두 번 해보는 일도 아닌데 매번 그렇게 다쳐오니 아델이 걱정하잖아.”

“…걱정은 무슨. 부축이나 해라.”


 더 빈정거릴 것 같았지만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부탁에 응했다. 여성이었지만 엔간한 남성 못지않게 힘이 셌던지라 부축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산산조각이 난 범인의 앞에 다가갔다. 


“이름은 레밍 오스턴. 현 무직에 가족관계 없음. 거주지는 PA구역 145b빌라 5층 3호. 혐의는 살인과 사이코 해저드 발발이라…어지간히 심심했나 보네.”


 뇌수와 피가 바닥에 흩어진 걸 보면서도 프로필을 줄줄 읊으며 가볍게 말하는 그녀에게 남자가 고통으로 미간이 찌푸려진 채 타박했다.


“일단 밖에 나가서 아델하이트랑 알레한드로 씨를 봐야…아윽.”


 부축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몸을 숙인 탓에 삐끗한 왼다리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자연스레 말이 끊겼다. 통증에 끙끙대고 있자니 옆에서 상황 파악 따윈 진작에 집어던진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델도 알레 군도 문제 없어. 괜찮다구. 티스는 졸리고 피곤해서 이 음침한 고층 건물에 다시 들어오기 싫으니까 한 번에 끝내고 갈래.”

“내가 문제 있다는 생각은 안 드냐…?”


 볼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체를 뒤적거리던 그녀가 휘파람을 불었다. 뭔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보다 지식이 풍부한 자신이 살펴봐야 하지만, 몸이 피곤하고 아파서인지 도무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얼른 이 지긋지긋한 건물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 반, 아델이 걱정되는 마음이 반이었다. 


“이봐 헛똑똑이. 이거 네 분야 같은데?”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사내자식이 쪼잔하긴…”


 쯧쯧 하고 혀를 찬 여자가 뭉개진 살점 사이에서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피로 범벅이 된 물건은 흐린 시야에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에 몸을 늘어뜨리고는 여자에게 완전히 몸을 맡겼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다행히도 밀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지…의식이 까무룩하게 멀어지기 전에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는 눈을 떴다. 처음으로는 흰 천장이 눈에 들어왔고, 다음으로는 흰 이불보가 눈에 들어왔다. 세 번째로는 팔에 꽂혀진 링겔이 보였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고서는 익숙한 풍경에 마음을 놓고 몸을 이완시켰다. 공안국 소속 병원이었다. 아마도 기절한 사이에 티스가 데려온 모양이었다. 코를 찌를 듯이 번지는 피비린내도, 피에 젖은 옷도 정신을 잃은 사이에 모조리 사라진 채였다. 아, 이 흰 시트도 오랜만이다. 묘한 추억에 젖은 채 멀뚱히 이불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저쪽에서 문이 열렸다. 


“흐응, 깼네?”

“…지금 몇 시야?”

“산테의 오른쪽에는 시계가 있지만 꼭 티스가 읽어 줘야 한다면, 오후 3시가 조금 안 됐어.”


“약 15시간 정도를 내리 잤군..어쩐지 몸이 개운하더라.”


 산테는 오른쪽의 전자 시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뻐근한 감은 남아 있었지만 어제에 비하면 가히 쾌적한 컨디션이었다. 시계의 녹색은 14:49라는 숫자를 그려내고 있었다. 원래 출근 시간이 10시이니 지각도 대단한 지각이 아닐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근무 중의 부상이니 공결로 처리될 것이다.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티스가 왼편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을 꺼냈다.


“클땅 말로는 일 주일 정도만 쉬면 완치될 거라네. 모처럼만의 휴가를 즐기라구.”

“이 곳도 오랜만이다. 요 근래 하도 조용했어야 말이지.”


 티스가 킥킥 웃었다. 그녀는 집행관이 된 이래 한 번도 의료실 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 그 경이로울 정도의 튼튼함은 같은 집행관들뿐만 아니라 감시관, 그리고 분석관에게도 미스테리였다. 원 직업도 그쪽이었고, 집행관의 신분이 되면서도 꾸준히 스파링을 한 반면 산테는 원래 펜을 들고 서류를 처리하던 안경잡이 출신이었던 터라 유독 몸이 약한 편이었다. 운동도 거의 하지 않은 몸이 힘든 육체적 업무에 멀쩡할 리 만무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디 한 군데는 꼭 다쳐서 오기 일쑤였다. 크고 작게 의료실 신세를 지다 보니 담당 분석관과도 거의 매일 마주하게 되었다. 그를 곱게 보지 않는 의료실 담당 분석관에게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클렌저가 또 인상 썼냐?”

“너 말고 나한테도 그랬어. 클땅은 내가 참 신기한가 봐.”


 올해로 17살이 되는 어린 소년은 티스를 볼 때마다 인상을 팍 쓰곤 했다. 제 딴에는 적의를 드러낸다고 한 건데, 그게 티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 건지 그녀는 볼 때마다 그 어린 분석관을 놀렸다. 애칭까지 지어가면서. 이름이 클렌저니까 클땅. 간단한 논리였다. 


“신기한 마음이 2할이고 짜증나는 마음이 8할일 거라고 본다.”

“티스는 미스테리한 여자니까~원래 여자는 비밀이 있어야 매력적인 법.”

 

 널 여자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궁시렁대는 산테에게 손가락 가운데를 상큼하게 들어 보인 티스가 들고 있던 종이를 탁탁 털더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 관련 보고서야?”

“어. 빨리도 나왔네. 레자르 군이 밤샘 작업을 한 모양이더라.”


 성의 없는 시선이 종이 위를 슥슥 훑는 것을 보며 산테는 어젯밤 일을 상기했다. 분명 이름이 레밍, 레밍…오스턴이었나. 얼굴은 사진으로 수없이 봤으나 실제로 본 건 도미네이터를 겨누던 그 때뿐이었다. 늘 여유로운 웃음을 짓던 얼굴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일그러져 추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여.  그는 문득 자신의 경우를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죽음을 앞둔 나는 어땠는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이미 죽은 사람이었지만 물을 수 있다면 묻고 싶었다. 


“보고서 잘 올라갔고 사건은 완전히 종결났어. 사이코 해저드가 일어난 지역에는 곧 테라피리스트들이 방문한다고 하니 남은 건 강같은 휴식 뿐이랄까.”

“아, 아델은? 약물이 인체에 해롭지는 않았대?”

“짧게 기절하는 것 외엔 아무런 해가 없다네. 돌아와서 의료실에서 검사 받고 멀쩡한 거 체크하고 퇴근했어. 지금쯤 사무실에 있을걸”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제서야 완전히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집행관의 절대 명제 중 하나는 범인을 잡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감시관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가 전자를 수행하는 동안 티스는 후자를 수행했고 늦지 않게 전자도 수행했으니 밸런스가 잘 맞은 셈이 되었지만. 


 아델. 아델하이트. 산테는 그 감시관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뻐근해졌다. 이미 몇 년이 지난 일이건만, 어쩔 수 없는 인연인지 결국은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아직도 재회의 광경이 머릿속에 선했다. 1계의 집행관 산테, 3계의 감시관이었다가 1계로 소속이 바뀐 아델하이트. 1계에는 이미 알레한드로라는 다른 감시관도 있어서 조를 잘 짠다면 그녀와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감시관인 알레한드로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능숙한 베테랑이 필요했다. 산테나 2계에서 온 티스는 집행관치고는 제법 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나, 1계에는 그들의 선배격이 되는 집행관이 둘이나 있었다. 결국 알레한드로는 그들과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남겨진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몇 년이 지났는지, 과거의 일 따위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건만 사람 마음이란 건 생각만큼 깔끔하지도 간단하지도 않았다. 마음 속의 지저분한 단면이 재회에 의해 추악함을 드러내며 찢어진 느낌이었다. 함께 일한 지 반 개월이 되었는데도 관계에 진척은 없었다. 어색하고 껄끄럽지만 서로를 밀어낼 수는 없는 관계, 그 애매모호함은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아델에게 연락하고 싶었는데 네가 할 것 같아서 범인 쪽에 전념했었거든. 다행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리람. 연락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못 할 것 같아서 나에게 떠넘긴 거잖아.”


 꼭 아픈 부분을 집어내는 티스에게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산테는 그저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여기서 더 놀려봤자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아서인지 티스도 별 말 없이 종이만 팔랑팔랑 넘기면서 내용을 대충 눈으로 훑을 뿐이었다. 


“사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거든.”

“흐응.”

“아니, 정말이야. 이미 6년 전에 끝난 인생이나 다름없어서 몸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 다치면 다치는 대로, 죽으면 죽는 대로. 유독 의료실 단골이 되었던 건 그런 이유도 있었지.”


“그런데..죽음을 직감했을 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진지하게 생명을 위협받았던 게 이로써 세 번째였나. 첫 번째와 두 번째에는 내가 아직 미련을 못 버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산테는 말을 잇는 대신 잠자코 있었고, 티스도 구태여 채근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말 없이도 이유를 알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티스에게 말하는 건 반쯤은 거울을 보면서 말하는 느낌이었으므로. 


 인간으로써 삶에 가지는 본능적인 미련이 아닌, 특정한 대상에 대한 미련. 삶보다도 끈질기고 죽음보다도 강한 것. 6년이 지난 이제서야 알아채는 것도 참 미련스럽다. 


 문득 티스가 하품을 하더니 툭 뱉어냈다.


“찌질이.”


 그는 묵묵히 침대보를 응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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